밤바다에, 상쾌한 바람.
기분 좋게 울려 퍼지는 겨울의 파도 소리….
3년 전 그 때와 똑같다. 알 수 없는 쪽지를 줍고, 주니어급 데뷔전을 나가고.
“골드쉽, 고생했어.”
수많은 중장거리 G1뿐만 아니라 클래식, 티아라, 봄 시니어, 가을 시니어까지 모조리 3관을 따냈다. 마침내 URA 장거리 때에는 단거리에 나가겠다는 걸 뜯어말리고 장거리 1착으로 끝낸 지금 그때의 바다 앞에 서 있다.
“그 비전의 서에 적힌 곳은 안 가는 거야?”
골드쉽은 이제껏 비전의 서에 적힌 에덴을 쫓았다. 훈련하지 않겠다고 생떼 부리는 날마다 에덴을 언급하면 눈을 빛내며 훈련했기에 당연히 마지막까지 쫓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리마 기념이 끝난 마지막 날 바닥에 떨어진 쪽지를 줍지도 않고 트레이닝에 열중했다. URA예선, 준결승전, 결승을 준비하던 날마다 내 방에 에덴에 대한 힌트가 적나라하게 적힌 지도와 수족관티켓까지 있었음에도 골드쉽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무언가에 쫓기듯 트레이닝만 할 뿐이었다. 물론 훈련 도중 슈퍼크릭을 끌고 와 트랙 위에서 밥을 먹는다던가, 타즈나씨와 키류인씨를 데려와 날 어딘가로 내 쫓는다던 가의 기행은 변함없었다.
“네가 여태껏 쫓던 에덴이잖아? 최강의 불침함이 되어 구원자가 될 그곳 말이야.”
나는 조금 기대하는 마음으로 골드쉽에서 물었다.
무어라 대답할까? 수족관에는 1) 선악과가 열리지 않는다고 할까? 그것도 아니면 2) 11일이 지나버렸다고 할까? 어쩌면 3) 오컬텀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지루! 에덴 같은 건 수족관에 없으니까아~”
내 바로 옆 바위에 서 있던 골드쉽이 허공에 부채를 펼쳤다. 아무래도 이사장님의 깜짝 계획은 물 건너간 듯하다.
사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수족관으로 유인하기 위한 쪽지를 떨어트리다 못해 소문을 퍼트려 골드쉽을 제외한 학생들이 이사장님과의 수족관 데이트를 마친지 오래긴 하다.
“…정확히는 지금 없지만.”
골드쉽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바위 위에 선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허탈함과 공허함이 섞인 모습이었다.
나는 예상외의 반응이었기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놀라거나, 놀림당해 끌려가거나, 끝없는 자신감과 추진력을 이기지 못해 같이 소리 지를 준비만 했기에.
지금처럼 조용한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트레이너. 나랑 처음 만난 날 기억해?”
파도가 철썩였다. 나는 입을 열고 당당하게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골드쉽이 더 빨랐다.
“난 기억해. 어울리지도 않는 정장을 입고 트레센 학원을 기웃거리는 모습이라니. 트레이너 전문 납치범 골드쉽이 봤으니 다행이지, 정의의 경찰 골드쉽이 봤으면 아직도 수형 중이었을 거라고?”
골드쉽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따라 웃었고, 바람이 불었다. 파도가 쳤고, 별이 빛났다. 아름다웠다.
책과 열정뿐이었던 초짜 트레이너에게 기꺼이 온몸을 맡길 우마무스메를 만난 그날도 아름다웠다.
“바보같이 밤을 새우고 트레이닝 계획이나 짜는 책상머리 샌님이라니. 게다가 융통성이라곤 없어서 수면 부족은 달고 살지, 그 와중에 서류 놓을 줄 모르니 편두통은 툭하면 생기지, 앉아만 있으니 살은 찌고 치부 트러블까지 달고 살지. 심지어 초짜라 미숙하기까지 하다니. 내 트레이너가 초짜라니! 초짜라니!”
난 반박할 거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반박은커녕 남은 트레이너 일생 감사만 표해도 끝나지 않는다. 간신히 대학을 갓 나와 실전 감각 제로의 신입 트레이너를 전속 삼는 건 그 어떤 우마무스메도 안 할 행동일뿐더러, 학원에서 허가하지 않는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예외 대상이 되고 싶다면 무언가 특출난 게 있어야 한다. 가문의 교육법을 안다던가, 재능과 열정을 증명한다던가. 결코 나처럼 납치당해 강제로 담당 되는 것이 아니라.
“체력이 부족하니 운동도 시켜줘야지, 기분 나빠지면 외출도 해줘야지, 사무실이라도 얻게 해주려면 대회에서 트로피도 따 줘야지.”
하지만 기뻤다. 정말로 기뻤다. 골드쉽의 달리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기에. 그렇기에 되든 안 되든 노력했고,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안된다면 되도록 노력했다.
“거기다 레이스에서 지면 진다고 울지, 이기면 이긴다고 울지, 3착 하면 3착 한다고 울지. 도대체 안 울 때가 언제인 건지.”
“그 정도로 울지는 않았…”
난 정말로 그만큼 안 울었다고 주장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괜한 분쟁을 일으켜야 무엇하겠는가.
저번처럼 영상자료와 증인들의 인터뷰를 편집해 트랙 전광판에다 틀어놓을까 걱정해서가 결코 아니다.
물론 골드쉽이 성장한 아이를 보며 뿌듯함에 감격한 미소로 “이번에만 봐준다.”라고 했을 때야 안도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참 재밌었어. 특히 그날 아침의 일은 잊을 수 없지.”
난 바다에서 쥐구멍과 게 구멍 중 무엇이 더 숨기 좋은지 고민하다 골드쉽을 올려다보았다.
난 그제야 기묘한 위화감을 깨달았다.
“골드쉽.”
“트레이너. 기억해?”
골드쉽이 내 눈을 바라봤다. 별이 비췄을, 바람이 불었을, 파도가 쳤을 그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랑 마지막 날을 기억해?”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못했다. 할 수 없었다.
“기억해?”
그녀는 애원하며 묻곤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 뜨거운 입김으로 하얀 김을 내뿜었다.
“으랴랴랴랴랴랴!! 에덴이여 나 골쉽쨩을 기다려라!!!”
난 화들짝 놀라 골드쉽을 바라봤고. 그녀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봐~ 트레이너. 얼른 수족관에 가자고! 에덴이 날 부르고 있다아아아아!”
언제나처럼 의 골드쉽이었다. 언제나 웃고, 호탕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소녀.
“헤이헤이! 난 펭귄을 존경하지만 여긴 남극이 아니라고?”
그 때처럼 눈이 빛났고 웃음이 가득했다.
그녀가 뻗은 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장난기와 배려심이 넘쳐났다. 난 손을 뻗었고, 다시 내려놨다.
“뭐해, 트레이너? 내가 보고 싶은 건 깨어 있는 가오리가 아니라 잠든 가오리라고!”
대신 스스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손을 뻗었다.
“고마워. 언제나.”
난 골드쉽과 악수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리고 미안해. 언제나.”
골드쉽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도망칠 동작 대신 날 바라봤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봤다.
그녀는 단 한마디만 내뱉었다.
“뭐가?”
“글쎄. 수없이 많겠지. 수많은 사람을 끌고 와 증언시키고, 문서와 영상자료들을 이 자리에서 늘어놔도 부족할 만큼.”
“허어? 잘 아네? 그럼 얼른 수족관으로-“
“그리고 그 트레이너가 아니란 거 가장 미안해.”
그녀의 얼굴에 붉은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지평선 너머로 오늘의 태양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혹시 다시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분명히 눈부신 태양 빛에 눈을 감으며 기다렸다.
“빌어먹을 멍청이.”
짧은 기다림 끝에야 누군가 아침을 맞이했나 보다.
“멍청이는 항상 멍청이였어.”
아침이 찾아왔기 때문인지 바람이 세지고 파도가 더 거칠어졌기에, 골드쉽의 목소리를 드문드문 들어야 했다.
“한 번도… 멍청이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이른 아침의 추위는 너무나 쌀쌀했기에 손이 으스러지는 듯했다. 그 위로 알 수 없는 소낙비가 내려 서리가 끼었기에 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쁘게 굴어도 따라오고, 무시하면 관심 있다는 듯이 따라오고, 다른 트레이너한테 가도 응원한다며 따라오고…”
게다가 폭풍이 분 것인지 바람이 날 거칠 게 휘어잡아 감싸 안았다.
“먼저 에덴에 가 있겠다고 말했으면서! 왜! 왜…”
나는 아침에 일어난 소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나는 예상하는 무언가가 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가 억측이었고 아니길 바라기에.
그저 병원에서 억지로 나와 책으로만 트레이너 자격을 취득한 바보에게 주어진 게 운명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길 바라기에.
“미안. 에덴에 1착으로 가면 좋은 건 줄 알았는데.”
나는 눈을 뜨고 ‘생각’했다.
에덴보다 좋은 게 여기 있다고.
“…레이너! …트레이너!”
“아.”
진짜 아침의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는 골드쉽이 보였다.
나는 말했다.
“미안. 에덴 1착은 별로더라.”
나는 골드쉽과 함께 첫 3년을 이겨 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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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교에서 말하는 낙원. 창세기 2:10 참조.
2) 애니메이션 ‘동쪽의 에덴’의 설정 중.
3) 드라마 ‘수퍼내처럴’ 시즌 15에 등장하는 에덴 동산으로 가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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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색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원작을 훼손한 게 아닐까 우려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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