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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엽편

우마무스메 - 골드쉽 선장은 우라라하지 못한 선원을...

“비통. 우리 트레센 학원은 모두의 꿈을 이뤄주는 곳일세.”

그것은 통보였다. 어쩌면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트레이너 씨. 이번 3관 참가자 목록이에요. 그리고… 이건 학원에서 분석한 데이터에요. 아직 확정이 난 건 아니니까…”

아니면 아집에 대한 협박일까?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현실이 꿈에게?

“으랴랴! 골드쉽호 출항이다아아!”

어느샌가 도착한 트랙에는 골드쉽이 있었다. 잔디를 모두 더트로 만들어 버릴 양 땅 위에서 노를 젓는 해괴한 모습이었다. 나는 어처구니없음에도 웃음을 짓지 못했다.

“흠. 골드쉽호의 러더rudder 부분을 개량해야겠어.”
“타키온 씨? 그냥 저기다 바퀴를 달면 안 되는 건가요?”
“맥퀸 양. 그건 배가 아니라 바퀴 달린 탈것이잖나? 그리고 골드쉽의 요구에 따라 제작한 것뿐이야. 자신의 양팔로 트랙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배를 달라고 말이야.”

맥퀸과 타키온은 골드쉽의 배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둘의 대화를 끊지 못한 채 계속 들으며 트랙을 바라봤다. 양팔로 잔디 트랙을 헤집어놓는 골드쉽과 먼 뒤에서 터덜터덜 뛰어오는 우라라를 바라봤다.

고개가 이리저리 꺾여 위태로워 보였고, 팔과 다리는 더이상 땅과 신체를 이어주는 교도부대신 무거운 짐짝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어머, 트레이너 씨? 언제 오셨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말에 관심 가졌다는 말을 듣진 못했을 테니.”
“아앗! 타키온 씨! 그냥 관심만 가진 거거든요?!”

나는 둘의 활기차고 애정 넘치는 대화에 미소를 지어보려 했지만 굳은 표정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트레이너 씨? 혹시… 어디 아프신가요?”
“흠. 과로한 거겠지 최근 우리 모르모트군도 일이 많아서인지 실험 참가율이 저조하던데. 그래도… 이건 좀 심하긴 하군. 자네 괜찮나?”

난 내 몸을 흔든 타키온에게 손을 저어 너스레 떨었다. 그럼, 괜찮고말고. 그냥 땅 위에서도 배가 잘 다니는 게 좀 놀라워서 말이야.“

타키온과 맥퀸은 내 말을 믿지 않는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 몸을 훑어봤다. 어딘가 아픈지 수색할 요량인 것 같았지만, 상처 대신 다른 걸 발견해 버렸다.

난 누군가 덜 영근 피딱지를 건드린 듯 놀라 몸을 움직여버렸고, 서류 몇 장을 놓쳐버리게 되었다. 타키온은 흥미롭다는 듯 그 서류를 보았고, 난 빼앗지도 못한 채 몸이 굳어버렸다. 

“흠. 이번 가을 시니어 참가자 목록이군. 아니, 이거 예비 참가자 목록이로군.”
“어라, 벌써 나왔나요? 아직 마감까지 일주일 정도 남은 거로 알았는데요?”

이미 타키온의 눈은 서류를 전부 훑고 마지막 목록을 읽고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런데 뭐가 늦지 않았을까? 학원 내부 문건을 미리 손에 넣었다는 거?

“그러게 말이야. 우리나 관계자들은 사실 다 알긴 하니 큰 의미가 없긴 한데…….”

타키온의 눈이 어느 한구석에 고정되었다. 

“역시 루돌프 씨도 가을 3관에 도전하네요. 거기다 전부 1번 인기라니. 더 열심히 훈련해야겠는… 타키온 씨? 아리마를 보고 계신 건가요? 누가 참가하길래 그렇게 열심히…”

맥퀸도 무언가를 봤는지 잠시 시선을 멈췄다. 그리고 내 눈을 바라봤다. 피해야 하는지, 위로해야 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모른 척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메지로 가문의 맥퀸이라면 잘 알리라 기대했는데 그렇진 않은 모양이다.

“으아아아! 골드쉽호 침모오오올! 메이데이! 메이데이! 구조 요청한다! 좌표는 트레센 잔디 장거리 트랙! 잔디 장거리 트래애애액!”

골드쉽의 고통 어린 비명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와도 눈이 마주쳤다.
기운이 다 빠져버린 것인지 헥헥 거리며 숨을 몰아 내쉬면서도 기분 좋다는 듯 멈춰선 우라라.

“아! 트레이너다~~!”

양팔을 가득 벌려 나에게 인사한다. 그리곤 맥퀸에게도, 타키온에게도 자신을 봤느냐며 헤실헤실 웃어주었다.

맥퀸은 반 박자 늦지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고, 타키온은 서류를 등 뒤에 숨기며 미소 지어줬다.

그러면 난 지금 미소 짓고 있을까?

어느새 다가온 우라라는 가쁜 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눈을 빛내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있지있지?! 나 오늘은 잠자리 씨랑 열심히 달렸어! 골드쉽씨가 날개띠좀잠자리라고 했는데에! 어… 아무튼 멋졌어!”

나 또한 평소처럼 엄지를 들고 우라라처럼 양팔을 벌리며 칭찬해줬다. 오늘도 잘했어. 많이 힘들었지? 난 언제나 우라라를 믿어. 항상 오늘처럼 하면 내일은 더 좋아질 거야. 그러면 꼭 하게 될 거야. 꼭 하게 될…….

나는 목적어를 빠트리다 못해 말조차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응응! 내일도 더 좋아질 거야! 그리고 꼭 우승할 거야!”

상처받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이번 가을 아리마 기념 1착을 트레이너한테 선물해줄게!”

내가 상처받기 싫었기 때문이다.

 맥퀸이 숨을 삼켰다. 타키온은 입을 열려다 나의 눈치를 보곤 조용히 있었다. 정말 일초채 안 될 짧은 정적이었건만, 1착과 16착의 차이라도 되는 양 숨이 막혀왔다.

그렇기에 난 말해야 했다. 말해야만 했다. 도대체 뭐라고?

“응? 트레이너 어디 아파? 아프면 안 돼!”

우라라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맥퀸과 타키온을 바라봤다. 단순히 트레이너가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한 행동임은 우리가 모두 알았지만, 순간 세 사람 모두 그렇게 해석하지 못했다.

“그 우라라 양? 오늘 트레이너 씨가 좀 피곤한 것 같네요. 점심은 저희끼리 먹는 거 어때요?”
“맞아. 요즘 트레이너들이 모두 일 때문에 바쁘단 건 유명하잖아. 우라라 양. 얼른 밥 먹으러 가자고. 스페셜 위크도 기다리고 있을걸세.”

우라라는 둘의 반응에 날 바라봤다. 난, 결심하지 못한 채 손의 서류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플라잉 더치맨은 선장을 필요로 한다!!”
“우아아아!”

순식간에 목이 붙잡힌 맥퀸은 비명을 질렀고, 타키온 또한 놀라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날 바다에 던지다니! 모두 똑딱악어에게 던져주겠다!”

골드쉽은 날 바라봤고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이 일그러진 걸 보니 벌써 블랙펄의 저주를 받은… 그건 뭐야?”

난 손에 쥔 서류를 재빨리 숨겼다. 골드쉽은 예상치 못한 흔적을 발견한 탐정처럼 말했다.

“범인은 범행 현장에 언제나 돌아오는 법이지.”

히죽 웃으며 콧수염 쓰다듬는 연기와 함께 과장되게 허리춤을 짚었다.

“하지만! 수색 영장이 없으니 이번만은 넘어가 주겠어. 대신 내 선언을 잘 들어라. 범인!”

사고뭉치지만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는 골드쉽답게 일을 저지를 것 같은 행동을 취하기 전에 플롯을 바꿔내었다. 범인을 발견했지만, 법이 허락하지 않아 수색하지 못한다는 표정을 짓고, 조수인 타키온에게 서류를 받아낸다는 설정으로.

그리고 잘못된 서류를 가져온 조수를 혼내기 위해 그 서류를 큰소리로 읽는다는 장면으로.

“대회는 정정당당한 실력으로 겨루는 것이라는 항의를 받아들인 주최 측에 의견에 따라 잔디 및 장거리 적성에 부적합한 우마무스메의 출전을 반려합…”

골드쉽은 말을 멈췄고 우라라를 바라봤다. 우라라는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듯 흥미로운 표정으로 골드쉽의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골드쉽은 나를 바라보고 맥퀸과 타키온을 바라봤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엉터리로군.”
“이봐,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네놈들 모두!”

그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도 감추지 못한 분노였다. 골드쉽은 다시 한번 크게 외쳤다.

“본 아리마 기념 주최 측은 적성에 맞지 않는 우마무스메의 출전을 반려한다! 대상 우마무스메는 하루 우라라!”

나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아니 실제로 막혔다. 맥퀸과 타키온도 다를 바 없었다. 우라라와 골드쉽만이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리고 우라라도 우리처럼 돼가고 있었다. 우라라는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나를 바라봤다. 난 말하려 했다. 했었다. 

이제까지 수고했다고? URA가 남아있으니 괜찮다고?

상념은 이내 가슴팍의 큰 충격과 함께 끊어졌다.

“제군! 난 실망했다!”
“골드쉽! 그만 해요!”
“난 너희들에게 실망했다!”

골드쉽은 나를 깔아뭉갤 듯 바닥에 쓰러진 날 노려봤다. 붉은 눈동자가 내 멱살을 부여잡았다.

“너는 뭐냐! 무어란 말이냐! 네가 여기 왜 있느냐 말이다!”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맥퀸이 골드쉽을 끌어내 상황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골드쉽은 여전히 날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는 달린다! 달리기 위해 달리고, 달리고자 달린다!”

골드쉽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는 지금 멈춰선채 뭐하냔 말이다!”

나를 가리킨 손가락이 이내 펴졌다.

“다시 한번 묻는다! 넌 대체 뭐냔 말이다!”

나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너는 불합리한 통보에 수긍할 뿐인 패배자인가!”

아니다.

“넌 그릇된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에 불과 하는가!”

결코 아니다.

“반발하고, 개척하고, 혁명하고, 뛰쳐나가 깃발을 들 힘조차 없는 방관자인가!”

골드쉽은 단 하나의 대답을 요구했다.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아니, 어처구니없었다고 ‘믿던’ 나를 대신해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넌 누구인가!”

나는. 

“트레이너다!”

나는.

“우라라의 트레이너다!”

난!

“아리마를 제패할 하루 우라라의 트레이너다!”

골드쉽은 씩 웃었다. 골드쉽은 내 손을 멱살을 잡아 날 일으켰다. 그리고 맥퀸과 타키온을 향해 짐짝 던지듯 던져버렸다.

“하루 우라라! 지금부터 적성 개조에 들어간다! 썩어빠진 정부를 개혁해 우리의 깃발을 흩날리기 위해!”

“ 좋아! 나 달릴게…!!!”

골드쉽은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달린다면 깃발 꽂을 곳을 알아보는 건 트레이너가 해야 할 일! 부탁한다! 제군!”

난 허탈이 웃으며 말했다. 예이 선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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